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철도 (문단 편집) == 역사 == 1872년 타카시마 카에몬(高島嘉右衛門, 1832 ~ 1914)[* 메이지 시대 요코하마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 때문에 '요코하마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렸다. 요코하마에는 타카시마초(高島町)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 사람의 성에서 따 왔다.]은 도쿄에서 아오모리까지 이르는 홋카이도 개척을 지원할 철도 노선을 건설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이 건의는 기각되었지만 [[화족]]이나 정부 요인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어, 사재를 모아 동일본 일대에 철도망을 부설할 회사를 세우기로 하여 1881년 설립되었다. '일본 철도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이노우에 마사루(井上勝, 1843 ~ 1910)를 비롯해, 정부에서는 기본적으로 철도는 전적으로 국가가 소유,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본 최초의 철도 노선이었던 [[도카이도 본선]]이 처음부터 국영 철도로 출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으나, 일본 철도가 설립될 즈음에 이르러서는 [[세이난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부 재정이 피폐해져 있던 차였다. 결국 1880년부터 1882년까지 설립된 3개의 사철 회사[* 1880년 설립된 도쿄마차철도(東京馬車鉄道, 다만 이름에서 보듯 마차철도인지라 철도로 안 치는 분위기.), 1881년의 일본 철도, 1882년에는 모쿠도샤(木道社, [[센다이시|센다이]]에서 영업. 다만 이름처럼 목제궤도를 사용한데다--사목--, [[수압식 철도]]였다.)가 설립되었다.]를 시작으로 일본 각지에 사철이 설립되게 되었다.[* 현재도 영업하는 사철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은 1885년 설립된 한카이 철도를 기반으로 하는 [[난카이 전기철도]]로, 폐지된 사업자(도쿄마차철도, 일본 철도, 모쿠도샤)까지 합하면 4번째로 오래되었는데, 목제궤도를 사용했던 모쿠도샤를 빼고 3번째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후 1883년 [[우에노역|우에노]] - [[쿠마가야역|쿠마가야]]를 시작으로 오늘날의 [[타카사키선]]과 [[도호쿠 본선]]을 건설해 나가, 1884년에 타카사키선, 1891년에 이르러 도호쿠 본선 전 구간을 개통하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 노선이 건설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아카바네와 국철 도카이도 본선의 시나가와를 잇는 연결선 시나가와선이 건설, 오늘날의 [[야마노테선]]의 전신이 되었다. 이렇게 동일본 일대에 노선망을 넓혀가던 일본 철도였지만, 사실 운영에 있어 정부와 국영철도의 간섭이 상당히 심했다. 시나가와선의 건설 또한 정부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고, 도호쿠 본선 또한 센다이 이북으로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국가가 건설 비용의 이자를 대신 내 주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국유지를 일본 철도가 무상으로 임대하거나 국철과는 서로 노선을 지어주는 등(...) 당대에 이미 반관반민(半官半民)이라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고, 현재에도 보통 반관반민 형태의 회사였다는 설명이 붙는다. 이후 1906년 철도국유법이 시행됨에 따라 --대놓고-- 국유화되어 국철에 흡수되었다. 국유화 시점에서의 노선 총연장은 1,384km(!)에 달했는데, 이는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사철인 [[킨키 일본 철도]]의 2.7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당시 관영철도의 총연장은 2,525km으로, 일개 사철이 국영 철도의 반에 달하는 규모였던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해 보자. [[http://intersect.dcmys.kr/17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